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하치조지마섬
1969: 44th year of Showa
YS-11기가 취항
프렌드십기와 7편의 정기편
일본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치조지마섬’과 계곡의 섬 ‘마우이섬’이 자매 도시를 체결하고, 마우이섬에서 조인식이 열렸습니다.
하치조코지마섬의 모든 주민이 이주 완료
과소화가 진행되면서 주민이 100명 이하로 줄어든 하치조코지마섬에서는 전화·수도·의료시설도 없어 지방자치단체에 주민 전체 이주 청원서를 제출하여 승인받았습니다. 이에 1969년 1월부터 이주를 시작하여 6월에 종료되었습니다. 일본 최초로 모든 주민이 섬을 떠난 사례가 되었습니다.
1971년
‘프리지어마루’가 정기항로 전용선으로 취항
도카이 기선 주식회사의 2,000톤급 새 배가 섬을 대표하는 꽃인 ‘프리지어’라고 명명되어, 미야케지마섬을 기항하는 하치조지마선의 정기항로 전용선으로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도내(島內) 버스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지방자치단체가 기존에 버스를 운행하던 하치조 교통 주식회사로부터 권리를 매수하여 버스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1975년
태풍 13호가 섬을 강타하여 막대한 피해 초래
순간 최대 풍속 67.8m의 태풍으로 인해 학교를 비롯해 섬의 건물과 도로 등에 큰 피해가 초래되었습니다. 당시 미노베 도쿄도지사 또한 피해 시찰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1957년
화력 발전소가 가동 개시
미야케지마 내연력 발전소에서 디젤 발전기가 이설되어 출력 120kW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58년에는 발전기 2대가 신설되어 출력이 800kW가 되면서 전력화가 급속히 진전했습니다.
도내(島內) 버스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지방자치단체가 기존에 버스를 운행하던 하치조 교통 주식회사로부터 권리를 매수하여 버스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1959년
하치조지마섬 최초의 가로등 점등
7월 31일에 미쓰네 농협 앞(현재 위치)에서부터 도쿠시게 의원(현재의 미쓰네 우체국 아래 교차로의 바다 쪽)에 이르는 길 양쪽에 47개의 가로등이 켜졌습니다.
1964년
하와이 마우이 카운티와 자매 도시 체결
일본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치조지마섬’과 계곡의 섬 ‘마우이섬’이 자매 도시를 체결하고, 마우이섬에서 조인식이 열렸습니다.
1965년
가미나토항 소코도 접안 암벽이 완성되었지만, 태풍의 높은 파도로 인해 붕괴
10월 태풍 28호의 높은 파도로 인해, 8월에 완성되어 준공식을 기다리던 암벽이 무너졌습니다. 연내 사용은 불가능했지만, 이듬해 12월에 복구 공사가 완료되어 성대한 축하식이 열렸습니다. 하치조코지마섬의 모든 주민이 이주 완료 과소화가 진행되면서 주민이 100명 이하로 줄어든 하치조코지마섬에서는 전화·수도·의료시설도 없어 지방자치단체에 주민 전체 이주 청원서를 제출하여 승인받았습니다. 이에 1969년 1월부터 이주를 시작하여 6월에 종료되었습니다. 일본 최초로 모든 주민이 섬을 떠난 사례가 되었습니다.
1947년
구로시오마루가 도쿄~하치조지마섬 간에 취항
도카이 기선 주식회사의 새 배가 소요 시간 13시간의 쾌속선으로 운항을 시작하여 매월 6회 항해가 이루어졌습니다.
1955년
4월 하치조무라, 오카고무라, 우쓰키무라가 합병하여 하치조마치 탄생
1954년 10월에는 정촌합병촉진법에 따라 미쓰네, 가시타테, 나카노고, 도리우치의 각 지역이 합병하여 하치조무라가 되었고, 이듬해 4월에는 하치조무라와 오카고무라, 우쓰키무라가 합병하여 인구 12,547명의 하치조마치가 탄생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