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세의 하치조지마섬
이즈노쿠니에 속한 고대의 하치조지마섬
나라 시대(710~794) 및 헤이안 시대(794~1185)에 하치조지마섬은 이즈 제도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이즈노쿠니의 일부로서 율령 국가의 지배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즈 제도는 예로부터 분화·조산 활동이 활발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신의 소행으로 여겨 미시마노카미로 숭배했습니다. 하치조지마섬에는 고쿠시(지방관)가 모시는 신사도 있습니다.(시키나이샤 신사라고 합니다.) 하치조지마섬은 고대에 ‘오키시마’라고 불렸으며, 하치조기누(전통 견직물) 생산지였던 데서 ‘하치조지마섬’이라고 불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섬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야타케지마’나 ‘핫초지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명도 있습니다.
중세 하치조지마섬 지배자의 변천
하치조지마섬의 명칭은 "호겐 모노가타리"의 성립 연대 연구로 미루어 볼 때 가마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즈노쿠니는 가마쿠라 시대에 막부와 호조 씨가 지배했지만, 하치조지마섬의 구체적인 지배 양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로마치 시대(1136~1573)에 이르면 하치조지마섬은 간토 간레이(무로마치 막부가 간토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가마쿠라부의 요직)와 이즈 슈고(지방관)를 겸하고 있던 우에스기 씨의 지배하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나가와(어느 지역인지 불분명)의 영주인 오쿠야마 소린이 다이칸(다이칸쇼에서 집무하는 관리)을 파견하여 하치조지마섬을 지배했습니다. 이후 이즈노쿠니를 제압한 이세 소즈이(호조 소운)가 하치조지마섬으로 진출했습니다. 미우라 반도의 미우라 씨도 가세하여 패권을 다투었지만, 호조 씨가 승리하면서 16세기는 호조 씨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싸움은 견직물을 둘러싼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